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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Movie


'새벽의 저주'로 감독 데뷔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7년작. 제라드 버틀러, 레나 헤디, 데이빗 웬헴 주연. 제 2차 페르시아 전쟁 초기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왕인 레오니다스와 그를 따르는 300명의 전사들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영화 '씬시티'의 원작자이기도 했던 프랭크 밀러의 동명 원작 - 그래픽 노블을 영화한 작품이다.

작년말쯤, 올해 3월에 블루레이로 출시된다고 전해졌지만 정작 10월이 되서야 발매되었다. 쳇.

페르시아 전쟁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기원전 492년경, 유럽으로 진군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된 전사(戰史) 중 동서양 문명간의 최초의 무력 충돌이라고 한다. 동양을 상징하는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는 이 전쟁에서 침략자였고, 반면 서양을 상징하는 그리스 동맹은 막강한 힘을 지닌 적으로부터 국민과 영토를 방어해야만 하는 수비자였다. 영화 속에서 페르시아 군대에 대한 뒤틀린 묘사는 이러한 이유를 고려할 때 약간은 납득할만 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다리우스의 후계자인 크세르크세스가 2차로 침공했던 시기로, 기원전 480년경에 발생한 전투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로 그리스 동맹에 참여하여 전투의 육상전을 진두지휘했다 - 참고로 해상에 배치된 해군의 지휘권은 아테네가 맡았다. 테르모필라이에 방어진을 구축한 그리스 동맹의 지상군 규모는 약 7천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면, 페르시아의 육군은 그 수가 어마어마하여 대략 25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스파르타인들은 페르시아의 공세를 2일간 막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서는 스파르타가 민중의 자유를 위해 싸운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스파르타는 대다수의 노예에 의한 노동과 생산력으로 유지되는 사회 체제를 가진 국가였다. 이들을 지배하는 스파르타 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페르시아가 본토까지 침공하게 되면 혼란으로 인해 노예가 달아나 사회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본작에서 이 부분이 빠진 것은 레오니다스와 그의 전사들의 영웅적 면모를 돋보이게하기 위한 영화적 선택으로 보인다.

스파르타인들은 제1차 페르시아 전쟁때 종교축제를 이유로 파병을 지체했다고 한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에 속하는 테르모필라이 전투에 적은 인원이 참가할 수 밖에 없던 이유에는 종교적인 행사와 왕권의 약화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레오니다스 왕이 델파이 신전에서 받은 신탁은 영화 상에 등장한 내용과 달리 '왕이 죽어야만 스파르타가 구원 받을 수 있다' 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테르모필라이에서 승리한 페르시아군은 그리스를 향해 진격하여 아테네까지 불태웠다. 하지만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그리스군에게 패배하여 그리스 정복은 실패한채로 아시아로 쫓겨나고 말았다. 영화 속 가장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전투씬이 바로 플라타이아 전투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지나는 이여, 스파르타에 전하라. 스파르타의 법에 따라 여기에 우리가 누워 있다고.' 라는 문장은 테르모필라이 협곡에 남겨진 비문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가 스파르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남긴 문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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